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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된 소리, 전장연
등록자:갤러리포토        등록일:2010-11-18        조회수:5285

 

풍경이 된 소리, 전장연

Silent Landscapes


오감은 과거를 기억한다. 어떤 이는 냄새로, 어떤 이는 맛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손끝의 촉감을 통해 기억의 잔상을 기념하기도 한다. 또한 오감은 소통한다. 목소리를 듣고 눈을 바라보고 냄새를 맡고 피부에서 전해지는 친밀함을 나눌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 전장연에겐 소리가 기억의 통로이자 소통의 매개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추억을 환기하고 대화하던 그가 이제는 소리의 파동으로 마음의 풍경을 만든다.



5월29일의 레퀴엠, 49×150cm, 람다프린트, 2009


손으로 빚어 만든 소리


전장연은 이전 미디어 작업에서 가족과 관련된 녹음 음원을 편집하면서 우연히 소리의 파동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양만으로는 원래의 소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에 흥미를 느끼고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지금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소리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남다르다고는 생각 못했죠. 그저 잠을 잘 때도 소리를 잘 듣고 사람도 목소리로 기억하는 편이에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녹음한 음원으로 작업한 것도 어쩌면 소리를 통해 가장 잘 기억하는 버릇 때문이에요.”

전장연의 ‘풍경이 된 소리’ 연작의 일부는 소리의 형태를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든 후 찍은 사진들이다. 그는 먼저 밀가루와 바세린, 파우더 가루를 소재로 음파의 일부를 자유롭게 형상화했다. 그리고 거울을 이용해 대칭을 이루며 반영되도록 해 마치 위아래로 요동치는 음파의 완전한 모양을 만든 후 촬영했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는 소리를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는 행위가 중요하다. 청각이 촉각으로, 다시 그 촉각이 시각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소리와 세상을 인식하는 전장연만의 방식이다.

“인터넷의 가상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길 좋아해요. 하지만 그것은 전자신호가 만들어내는 시뮬라크르, 믿어지지 않는 가짜 현실일 뿐이죠.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이 진짜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저는 시뮬라크르의 환경에서 가져온 소리를 손을 이용해 직접 눈앞에 보이는 조형물로 만들어 진짜 촉각에 의해 만져지는 소리로 만들고 싶었어요. 작은 행위일 뿐이지만 이전에는 잡히지 않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저 나름대로 소화하고 이해하는 과정이자 방식인 거죠.”

손자욱이 남는 생생한 현실은 소리에 믿음을 더한다. 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로서 전장연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회를 향해 말하고 싶었던 바를 손을 이용한 작업으로 해소했던 것이다. 밀가루나 파우더로 만들어진 소리의 형상이 음악이 가진 감성 또는 의미와 만났을 때 나오는 작용은 부차적이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음악 중 제게 의미가 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해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죠. 그래서 작품 양이 많지 않아요. 일단 선택된 곡을 연구하며 그 속에 담겨진 의미나 내용에 따라 작품을 구상해요.” 



어느 강연문, 64×195cm, 람다프린트, 2010


소리, 마음의 풍경이 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파동 이미지는 부드럽고 고운 밀가루로 만들어졌다. 한 개인이 태어나자마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묶이도록 역할하는 애국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본 작업이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처음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지만 점차 외부적인 문제로 넓혀지고 있다.

“내면의 이야기에서 외부의 이야기로 주제가 바뀐 첫 번째 작업이에요. 주변 환경과 자신의 관계를 바라보게 된 의미 있는 작업이죠. 어린 시절 아침마다 들었던 애국가는 무언가 내게 안전한 소속감을 주었어요. 하지만 장난치듯 만든 밀가루 산맥은 위대한 대한민국도, 올바른 사회인의 다짐도 드러나지 않죠.”

그의 작업은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작업인 예술활동의 생리를 반영하면서 작업과정에서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생활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는 역할을 한다. 반복적인 행위는 피아노 연습곡의 하나인 하농의 파동을 표현한 ‘읽기연습-하농’에서 드러난다. 각각 작업된 29개의 패널은 비슷한 음을 연주하는 하농의 29마디를 연상시킨다. 세상에 대한 서툰 이해력을 위해 끊임없이 읽기 연습을 하고 있는 작가의 내면이 반영되었다.

라디오에서 들은 군대 행진곡은 여성의 입장에서 듣기에는 매우 거칠고 인위적일만큼 웅장했다. 그는 ‘행진’ 작업에서 오히려 밀가루보다 더 부드럽고 반짝거리는 파우더를 사용해 상반된 주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음파의 부분을 조형물로 만들어 조각조각 찍고 하나의 긴 파동 이미지로 이어 붙이던 초기 작업은 조형물 대신 인터넷에 떠돌던 자연의 이미지를 이어 붙인 파노라마 풍경작업으로 발전되었다. 소리로 만들어진 풍경이지만 소리가 멈춰버린 듯한 고요함이 전해진다. 



silent Siren, 170×70cm, 람다프린트, 2010

“밀가루 등으로 만든 소리의 모형을 보면 물 위의 섬이나 산맥이 연상돼요. 그래서 주변의 풍경을 담은 소리 혹은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려 했죠. 전시 제목인 ‘Silent Landscapes’처럼 어떤 메시지도 보이지 않는 풍경이에요. 눈에는 보이지만 귀로는 들리지 않는 파동 이미지처럼 역설적으로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 풍경을 표현한 거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쓰인 곡은 북유럽 작곡가인 그리그의 ‘오제의 죽음’이다. 전장연은 ‘5월29일의 레퀴엠’에서 장엄한 장송곡을 북유럽 특유의 감성을 상징하는 침엽수에 빗대어 표현했다. 음악 파동의 이미지는 마치 침엽수림으로 덮인 섬처럼 표현됐다.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섬은 고 노전대통령의 서거처럼 소통의 단절과 괴리감을 의미하며, 고요하고 음울한 음악의 느낌은 채도가 낮고 건조하게 표현되었다.

“국민의 슬픔이며 사회의 아픔이지만 동감하지 못하고 헌화 한번 하지 않은 채 어색하게 멀리 떨어진 풍경을 보는 것마냥 조용히 서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닮았어요. 멀리 보이는 조용한 섬은 소통에 실패한 채 침묵을 지키는 조용한 풍경이죠.”

현대철학자인 지젝의 강연록을 녹취한 음원의 파동 이미지는 ‘어느 강연문’에서 차가운 물 위에 떠있는 날카로운 얼음조각으로 표현되었다. “작은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강연은 왠지 모를 이질감을 주었죠. 알아들을 수 없고 서로 통하지 못해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70×160cm, 람다프린트, 2009



행진, 65×170cm, 람다프린트, 2010


침묵하는 풍경, 소통과 단절의 딜레마


전장연의 소리 파동 작업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정적인 구성을 통해 드러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그의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점차 내면의 소리가 사회를 바라보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오면서 느꼈던 것 중의 하나가 예술가로서의 열등감이었어요. 사회적인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 창피해야만 하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렇지 않았고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의식이 작품에 담겨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어요.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생각, 외부와 잘 소통하고 있지 못한 상황, 이질감,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단절의 느낌과 소통하고 싶다는 느낌이 동시에 표현된 것 같아요.”

그의 풍경은 마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듣지 못하는 거리에 있는 듯하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가라는 직업을 선택하면서 실제의 자신과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덕목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드러나 있다.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해 침묵하는 풍경이다. “소통의 대상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하는 것 같고요. 명확하지 못한 태도와 고민하는 현재의 모습은 현재의 제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솔직한 최선의 표현이에요. 불완전하지만 완전으로 향하는.”

전장연의 ‘풍경이 된 소리’ 연작은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과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작가의 내면 풍경 혹은 자화상과 같다. 소리를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 느낄 수 있는 작업으로 만드는 행위는 사회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통과의례와 같다.

“소심한 행동으로 해소하는 제 작업은 행위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행위를 보여주기 적절한 사진과 영상 매체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사진의 기계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다양한 매체로 작업의 폭을 넓히는 것이 남은 숙제에요. 앞으로도 쉽게 타협하기보다는 갈등하고 고민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읽기연습-하농 No.1, 각 32×15cm(총 29개의 프레임), 람다프린트, 2010


글|김보령기자<2010 월간사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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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전장연  Chun Jang-Yeon

2007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2010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서양화전공 재학


Group Exhibition

2010    메아리 3인전(트렁크갤러리, 서울)

2010    채집된 풍경-한수진 전장연 2인전(space 15th, 서울)

2009    SIPA(예술의 전당, 서울)

         Water Project(서울 보증보험갤러리, 서울)

         현실 경계 그리고 비현실(이화 아트센터, space 15th, 서울)

 

자료제공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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